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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 없는 신비로운 곳으로 달리 전례가 없어 더욱 특이한 곳, 이루지 못한 천불천탑의 꿈 화순 운주사, 석불과 석탑, 와형석조여래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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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위치 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창건에 대하여 도선국사, 운주 스님, 마고할미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지만, 그 중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께서 풍수리지를 바탕으로 지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깊은 계곡에 일천구의 불상과 일천기의 석탑이 솟은 신령스러운 광경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를 천불천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의 불상과 탑은 흔히 우리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교한 불상과 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조각기법이 전통적인 불교 예술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의 계보에서 벗어난 토속적이며 자유분방한 모습입니다. 양식과 배치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었지만, 마땅히 확립된 정설은 없습니다. 이름 없는 민중들과 석공들이 하나둘 모여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경우이기 때문에 양식과 배치구조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들도 있습니다. 누가 언제부터 왜 이런 불상과 탑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많은 곳입니다. 신라의 고승 운주화상이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는 전설과 마고할미가 지었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민족이 세웠다는 설화와 도선국사가 하룻밤에 조성했다는 전설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석물들의 모습이 투박하다 보니 석공들의 연습장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있습니다. 도선국사는 풍수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배 모양으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영남지역은 높은 산이 많아 무겁고 호남지역은 평야여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돌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도선국사의 다른 전설로는 천계의 석공들을 불러 새벽 닭이 울기 전까지 하룻밤에 작업을 모두 끝내야만 했는데 모든 작업을 다하고 마지막 와불을 만들고 세우기 전에 새벽 닭 우는 소리에 석공들이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설화에 따르면 와불이 일어서는 날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나라가 활짝 열려 천 년간 태평성대를 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선국사는 9세기 인물이지만 운주사 유적지는 11세기에서 13세기로 추정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노비와 천민들이 새 세상을 갈망하는 운동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전해오는 이야기는 12세기경 몽골에 저항하던 시기였던 만큼 하루빨리 천불천탑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영령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급하던 때였으니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정교한 조각은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밝혀지는 그날까지 천불천탑은 신화로 남을 것입니다. 일주문에 쓰인 영구산 운주사라는 현판이 여기부터 신비의 정원임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영구산이란 지명은 옛날 운주화상이 천불천탑의 운주사를 세웠지만 신도가 없어 큰 거북으로 변해 사람들을 등에 태워 데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뒷산에 올라가 죽었는데 그 때부터 이 산을 영구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일주문의 안쪽 현판은 천불천탑 도량이라 하여 여기가 수많은 탑과 불상의 도량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940년대에는 200여점의 유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투박한 91구의 석불, 21기의 석탑과 대표적 유물로는 구층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형석조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제273호)을 비롯하여 총 16건의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석불과 석탑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구층석탑(보물 796호)이 있습니다. 탑의 높이는 10.7m로 경내에서 가장 높고, 지대석 위에 1층 탑신을 세운 기법도 생소하지만 전체적으로 탑이 독특합니다. 2층부터 위로 탑신 내면에는 두 겹의 마름모 새김 속에 꽃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옆 산비탈 바위 아래에는 장난감처럼 만들어진 석불군이 있습니다. 조각하다 말고 잠시 옆에 세워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유심히 바라보면 그 옛날 석공들이 여기 모여 앉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새기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석불군 옆 계단을 올라가면 오층거지석탑이 있습니다. 투박하면서도 왠지 정감이 가는 석탑입니다.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쌍교차문 칠층석탑입니다. 한자 그대로 두 개가 쌍으로 교차하는 문양입니다. 외소한 듯 수직으로 솟아 있는 모습은 경내에 있는 구층석탑과 비슷합니다. 외형은 신라 양식이지만 측면에는 수직문이 그려져 있습니다. 구층석탑과 석조불감 사이에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광배석불좌상이 있습니다. 큰 귀와 기다란 코 두툼한 입술이 인상적이며 총 3기가 나란히 있습니다. 다음으로 칠층석탑과 석조불감(보물 797호) 그리고 원형 다층석탑이 한 줄로 서 있습니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5.3m에 웅장한 사각형 석조불감은 팔작지붕으로 마감한 것이 목조 건축 양식임을 보여줍니다. 두 분의 석불이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고 남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체 석불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찰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 같은 짐작이 됩니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합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우리나라 사찰에서 유래가 없는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이 있습니다. 5장의 돌을 조립해서 10각형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연꽃잎을 새긴 윗받침 돌을 얻었는데, 햄버거를 여러 개를 쌓아 올린 듯한 모습입니다. 호떡 같기도 하고 원반 같다고도 합니다. 올라갈수록 작아지고 현재는 6층이지만 원래는 그 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형다층석탑을 지나면 대웅전으로 향하게 됩니다. 대웅전 앞에는 다층석탑이 있습니다. 다층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4층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머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청이 아름다운 범종각의 천장에는 네 마리의 용이 용맹스러운 모습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범종각 옆에도 작은 다층석탑이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협시불 없이 부처님이 독전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마치 연화대좌에 앉아 설법하시는 모습 같이 느껴집니다.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의 길을 따라가면 산신각과 미륵전이 나오는데, 이 주변에도 낯선 탑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높은 기단석 위에 항아리 네 개를 쌓아놓은 듯한 발형다층석탑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륵전 옆 언덕 위의 원반형석탑 명당탑은 원래 형태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이지만 탑신과 어깨석이 원형인 것은 특이한 사례이며, 그 옆에 있는 사층석탑도 이채로우며 서로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느낌입니다. 미륵전 뒤쪽 암벽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비바람에 조각선이 많이 흐려진 모습입니다.
와형석조여래불(와불)
와불를 만나기 위해 대웅전을 가로질러 종각 담장 밖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거북바위오층석탑과 거북바위교차문칠층석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와불은 바닥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그대로 조각한 불상입니다. 누워있는 불상이며 크기가 12.7m에 이릅니다. 도선국사가 새벽 닭 우는 소리에 미완으로 남기고 떠났다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이 불상이 일어서면 미륵부처가 도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머무는 곳,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장소, 천불천탑 도량 신들의 정원 화순 운주사, 아직도 저 멀리 석공들의 정과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